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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lin
자고 일어났을 때 눈꼬리 밑에 가는 실선이 패여 있었다. 처음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 잠결에 손톱으로 상처라도 만들었나 하였다. 그러나 선을 손으로 꾹 눌러보고, 피부를 당겨보기를 몇 번.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주름이었다. 흘러간 세월의 흔적이다."기가 차는군."이른 아침 거울을 바라보며 그는 혼잣말을 했고, 곧이어 생각했다.죽어야 한다. 나 자신의 의지로, 이 생을 끝내야 했다. "안녕하세요, 뮐러 선생님."그는 어깨와 모자에 쌓인 눈을 털어내며 낡은 나무문을 열고 들어선다. 평범한 사람보다 머리 하나는 훌쩍 큰 장신의 손님을 알아본 약사가 아는 척을 먼저 해왔다."어쩐 일로 오셨어요?""저택에 쥐가 끓는군.""쥐요?"그는 느리게 고개를 끄덕거린다. 인간과 깊게 이야기를 하여 얽히는 것을..
고귀한 분께서 저 높은 가지에서 이 땅으로 임하여 다시금 인간의 거죽을 뒤집어 쓰셨군요.어이 이곳에 계십니까? 그 말을 누가 했었던가. 헤르만은 목소리를 내었던 인간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벌써 50년이 넘은 일이었다. 중간계에 발을 들여 정보를 모으고 다니며 찢었던 제 가죽의 수가 벌써 두 손을 넘어갔다. 인간이 섣부른 의심을 할 때, 뿌리의 것들과 엮을 때마다 새로이 이름과 나이와 지리멸렬한 신상을 만들어내니 이젠 하나하나 추억하는 것도 지겨웠다.그럼에도 핏빛의 눈을 감고 그때를 회고하면, 그것은 그가 두 발로 기는 인간의 땅으로 현계하여 인간의 거죽을 흉내 내고 다니기 시작하였을 때. 아마도 열에서 스물 사이, 적당히 푸릇해지기 시작하는 나이대로 구성한 육체를 보고 어느 노파가 ..
비가 온다. 카쳐 헤어우드는 내리는 비에 젖어 얼굴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대수롭지 않게 쓸어 넘긴다. 피에 젖은 가죽 장갑으로 머리카락을 넘기는 손길에 흰 빛의 피부를 따라 반투명한 붉은빛이 들었다가 내리는 빗방울에 씻겨 사라진다. 쏟아지는 빗방울 덕분에 깊은 청색의 머리카락에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던 검붉은 핏자국이 함께 사라지고 있었다. “추적 방향은 어떻습니까?” 카쳐의 부관은 그의 질문에 품에서 지도를 꺼내 확인하고, 나침반을 확인한 후 고개를 끄덕거린다. 방향은 여전히 북동쪽, 직선을 그리며 올곧게 달려온 그들의 부대는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적군의 뒤를 쫓고 있었다. “문제없습니다. 헤어우드 경.”“그럼 5분간 쉬었다가 마저 쫓도록 할까요. 괜찮습니까?”“그렇게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철수하는 ..